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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성가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사, 다시 믿게 된 사랑의 말씀

myinfo81487 2026. 8. 19. 13:31

목차


    십자가 너머로 비치는 빛과 하나님의 구원과 사랑

    찬양을 부르면서 정작 가사의 의미를 잊고 있었던 적이 있습니다. 저에게도 그런 시간이 있었습니다. 찬양대에서 「God So Loved the World」를 처음 연습했을 때 저는 하나님의 사랑보다 악보에 먼저 눈이 갔습니다. 어느 부분에서 음이 올라가는지, 다른 성부와 음정이 잘 맞는지, 호흡은 어디에서 해야 하는지를 확인하는 데 집중했습니다.그런데 어느 날 연습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 문장이 계속 마음에 남았습니다.“God so loved the world.”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셨다는 너무나 익숙한 말이었습니다.그런데 그날은 평소와 다르게 들렸습니다.
    '세상'이라는 말 안에 나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와닿았습니다.그때부터 이 곡을 조금 다르게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좋은 소리를 내는 것만 생각하지 않고, 내가 지금 부르고 있는 말씀을 정말 믿고 있는지 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익숙해서 잊고 있었던 하나님의 사랑

    교회에서 오래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익숙한 성경 말씀을 만날 때가 많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도 그중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저도 이 말씀을 여러 번 읽었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너무 익숙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말씀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지 않고 지나칠 때가 있었습니다.

    찬양대에서 이 곡을 연습하면서 그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가사는 정확하게 알고 있었지만, 그 말씀이 오늘의 나에게 주어진 말씀이라는 사실은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특히 '사랑하사'라는 말이 마음에 오래 남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잘했기 때문에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일을 잘했을 때도 사랑하시고,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도 사랑하십니다.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았을 때도 사랑하시고,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느끼는 날에도 여전히 사랑하십니다.

    이것을 머리로 알고 있는 것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달랐습니다.

    저는 이 찬양을 통해 그 차이를 조금씩 깨닫게 됐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이 다시 마음에 들어온 순간

    「God So Loved the World」를 부르면서 자연스럽게 요한복음 3장 16절을 다시 읽게 됐습니다.

    이 말씀에는 하나님의 사랑뿐 아니라 그 사랑이 어떻게 나타났는지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셨고, 독생자를 주셨으며, 믿는 사람에게 영생을 주셨다는 내용입니다.

    저는 여기에서 하나님의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희생을 동반한 사랑이라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과 실제로 사랑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은 다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사랑을 말씀으로만 표현하지 않으셨습니다. 독생자를 주시는 것으로 그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래서 이 곡을 부를 때 저는 단순히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문장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 사랑이 얼마나 큰 사랑인지, 그리고 그 사랑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가사를 바라보니 같은 곡인데도 이전과 전혀 다른 마음으로 노래하게 됐습니다.

    찬양대 연습에서 처음 발견한 문제

    처음에는 이 곡이 특별히 어려운 곡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음정과 리듬을 맞추면 연습이 어느 정도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합창단 전체가 함께 부르기 시작하자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가 나타났습니다.

    가사가 잘 들리지 않았습니다.

    각자 자기 파트를 열심히 부르고 있었지만 전체가 함께 노래하니 중요한 문장이 뚜렷하게 전달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음량을 더 크게 하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니 오히려 소리가 거칠어졌습니다.

    그때 지휘자께서 가사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문장을 너무 세게 부르려고 하기보다 말하듯이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먼저라고 알려주셨습니다.

    그때부터 연습하는 방법이 달라졌습니다.

    악보보다 가사를 먼저 읽어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어느 날 연습 전에 악보를 내려놓고 가사만 천천히 읽어봤습니다.

    평소에는 음악을 먼저 보고 가사를 따라갔지만, 이번에는 반대로 해봤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이 문장을 몇 번 읽고 나니 마음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특히 '이처럼'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냥 하나님이 사랑하셨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독생자를 주실 만큼 사랑하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 악보를 다시 보니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부분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어디에서 호흡해야 가사의 의미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지, 어느 부분에서 음량을 줄여야 중요한 문장이 더 잘 들리는지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 경험 이후 저는 새로운 성가를 연습할 때 가능하면 가사를 먼저 읽어보려고 합니다.

    악보의 음표를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음표를 통해 무엇을 전달하려는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혼자 잘 부르는 것보다 함께 듣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찬양대에서 연습하면서 또 하나 배운 것은 '내 목소리'에 너무 집중하면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처음에는 제 파트를 정확하게 부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성부의 소리를 잘 듣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합창은 혼자 부르는 음악이 아닙니다.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가 서로 다른 음을 부르면서 하나의 화음을 만들어냅니다.

    어느 한 성부가 지나치게 크거나 다른 파트와 음색이 맞지 않으면 전체적인 울림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연습할 때는 제 목소리뿐만 아니라 옆 성부의 소리를 들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내가 조금 작게 불러야 전체 화음이 좋아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이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네 성부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소리를 들었을 때 알게 됐습니다.

    합창에서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나 잘 들리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하나로 들리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이 경험은 제 신앙생활도 돌아보게 했습니다.

    나만 잘하려고 하면 공동체의 조화가 깨질 수 있습니다.

    서로의 소리를 듣고 조금씩 양보할 때 오히려 더 아름다운 소리가 만들어집니다.

    가사가 들리는 찬양을 만들기 위한 연습

    이 곡을 준비하면서 저희 찬양대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중 하나가 딕션(diction)이었습니다.

    딕션은 노래할 때 가사를 얼마나 정확하고 분명하게 전달하는지를 의미합니다.

    합창에서는 여러 사람이 동시에 노래하기 때문에 자음과 모음의 발음이 조금씩 달라도 가사가 뭉개질 수 있습니다.

    특히 영어 가사는 발음이 조금만 달라도 전체적인 인상이 달라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단어를 함께 발음하고, 자음이 너무 강하게 튀어나오지 않으면서도 가사가 들리도록 반복해서 연습했습니다.

    호흡도 맞췄습니다.

    각자 편한 곳에서 숨을 쉬면 한 문장이 중간에서 끊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음량의 변화도 중요했습니다.

    처음부터 큰 소리로 부르면 후반부에서 표현할 여지가 줄어듭니다.

    작게 시작할 부분에서는 충분히 절제하고, 메시지가 확장되는 부분에서 자연스럽게 소리를 키우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저는 음악적인 기술도 결국 말씀을 잘 전달하기 위한 과정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찬양을 마친 뒤 일상에서 달라진 생각

    이 곡을 연습한다고 해서 제 삶의 문제가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걱정할 때가 있고, 일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그런데 한 가지 작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예전에는 어려운 일이 생기면 먼저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를 생각했습니다.

    요즘에는 가끔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문제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을 바라보는 방향이 조금 달라집니다.

    사람의 평가에 지나치게 흔들릴 때도 이 말씀을 떠올립니다.

    내가 좋은 결과를 얻었기 때문에 사랑받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려고 합니다.

    찬양이 제 삶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 이런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예배 시간에만 감동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월요일 아침이나 힘든 하루 가운데서도 그 가사가 다시 떠오르는 것입니다.

    이 곡을 준비하는 찬양대에게 드리고 싶은 이야기

    「God So Loved the World」를 준비하는 찬양대라면 처음부터 음정과 리듬만 연습하기보다 요한복음 3장 16절을 먼저 읽어보시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각자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보면 좋겠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있는가, 아니면 너무 익숙해서 그냥 지나치고 있는가?”

    이 질문 하나만으로도 연습하는 마음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합창에서는 자기 소리를 조금 내려놓고 서로의 소리를 들어보시길 권합니다.

    좋은 합창은 각자의 목소리를 크게 내는 데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목소리가 하나의 메시지를 전달할 때 만들어집니다.

    무엇보다 가사를 회중에게 전달한다는 마음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찬양대는 단순히 무대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예배 가운데 말씀을 노래로 전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이 찬양을 부른다면

    처음 이 곡을 불렀을 때 저는 음정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지금 다시 악보를 펼친다면 가장 먼저 가사를 읽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천천히 생각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그 세상 안에 내가 있습니다.

    내가 잘할 때만 사랑받는 것이 아니라 부족할 때도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또한 내가 받은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나누며 살아갈지도 생각하게 됩니다.

    찬양은 노래하는 순간에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이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마무리 — 음악보다 먼저 마음으로 고백하는 찬양

    「God So Loved the World」는 저에게 처음부터 특별했던 곡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처음에는 다른 성가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반복해서 부르면서 익숙했던 성경 말씀이 다시 살아났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셨다는 사실.

    그리고 그 사랑 안에 나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

    저는 이것을 다시 깨닫게 된 것이 이 찬양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찬양대에서 음정을 맞추고, 호흡을 맞추고, 발음을 맞추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보다 먼저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내가 부르는 말씀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이 곡을 부를 때는 단순히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기보다 한 문장을 진심으로 고백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십니다.”

    그 고백이 제 마음에 먼저 울리고, 그다음 제 목소리를 통해 회중에게 전달되기를 바랍니다.

    그때 비로소 찬양은 음악을 넘어 하나님의 사랑을 함께 고백하는 예배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참고 자료

    대한성서공회 — 성경전서, 요한복음 3장 16절
    Hymnary.org — 교회음악 및 찬송 자료
    「God So Loved the World」 관련 악보 및 교회음악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