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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성가

하나님만 바라보라 (시편 62편, 찬양대, 유니즌)

myinfo81487 2026. 8. 10. 10:32

목차


    하나님만 바라보는 십자가 이미지

    찬양 연습을 하다가 멈춰 서게 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만 바라보라"는 가사를 반복해서 부르던 중, 저는 문득 제가 지금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 돌아보게 됐습니다. 시편 62편을 바탕으로 한 이 곡은 화려한 찬양이 아니라, 흔들리는 마음을 조용히 붙잡아 주는 곡입니다. 연습하면서 제가 겪은 변화를 솔직하게 적어 보았습니다.

    시편 62편이 이 찬양에 담긴 배경

    솔직히 이 곡을 처음 받았을 때는 단순한 회중 찬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악보를 보니 Moderato, ♩=100으로 표기된 차분한 템포였고, 특별히 기교가 필요한 곡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가사의 출처인 시편 62편을 찾아 읽으면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시편 62편은 다윗이 정치적 위기와 주변 사람들의 배신 속에서 쓴 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라는 구절이 이 시의 핵심입니다. 다윗은 단순히 기분이 좋아서 이 고백을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상황이 무너지는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반석(Rock)으로, 구원(Salvation)으로, 피난처(Refuge)로 부르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반석이란 단순히 튼튼하다는 상징이 아니라, 어떤 외부 충격에도 흔들리지 않는 절대적인 기반을 의미합니다. 다윗은 그 기반이 하나님이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피난처 역시 단순한 도피처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숨어들어 쉴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뜻합니다. 이 두 단어를 묵상하고 나서야 이 찬양의 무게가 달리 느껴졌습니다.

    찬양의 성경적 뿌리를 이해하는 것이 연습에도 영향을 줍니다. 가사의 배경을 모른 채 음정만 맞추는 것과, 다윗의 상황을 알고 부르는 것은 전혀 다른 경험이었습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그 차이가 꽤 컸습니다.

    • 시편 62편: 다윗이 위기 속에서 쓴 신앙 고백시
    • 반석(Rock):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절대적 기반으로서의 하나님
    • 피난처(Refuge): 적극적으로 숨어들어 안식할 수 있는 공간
    • 구원(Salvation): 단순한 위기 탈출이 아닌, 근본적인 회복을 가리키는 개념

    요약: 시편 62편의 반석·피난처·구원이라는 세 개념을 이해하면, 이 찬양의 가사가 단순한 위로가 아닌 신앙 고백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은혜로운 찬양을 위한 찬양대 연습

    연습을 거듭하면서 이 곡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유니즌(Unison) 구간이었습니다. 유니즌이란 여러 성부가 동일한 선율을 함께 노래하는 기법으로, 쉽게 말해 소프라노·알토·테너·베이스가 한 목소리처럼 같은 음과 리듬을 부르는 것입니다. "나의 영혼아 나의 영혼아"라는 구절이 바로 이 유니즌으로 처리되어 있었습니다.

    처음 연습할 때 저는 이 부분을 그냥 지나쳤습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부르면서 느낀 건, 여러 목소리가 하나로 모이는 그 순간이 마치 각자 흩어져 있던 마음이 한 방향으로 모이는 것 같다는 점이었습니다. 마치 자기 자신의 영혼에게 직접 말을 거는 느낌이랄까요. 단순히 화음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하나의 목소리를 만든 편곡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피아노 반주는 레가토(Legato)로 부드럽게 이어집니다. 레가토란 음과 음 사이를 끊지 않고 매끄럽게 연결해서 연주하는 방식으로, 호흡이 끊기지 않고 물 흐르듯 이어지는 느낌을 만들어 줍니다. 찬양대 입장에서는 반주가 레가토일 때 성악 파트도 호흡을 충분히 길게 유지해야 자연스럽게 어울립니다.

    이 곡은 처음에 차분하게 시작해서 후반부로 갈수록 음악이 확장되는 구조입니다. 음악이 점차 넓어지는 이 흐름이 묵상에서 확신으로 이어지는 신앙의 과정처럼 느껴졌습니다. 곡 전체를 구조적으로 이해하고 나서 연습하니 표현 방향이 훨씬 명확해졌습니다.

    찬양대 연습에서 실제로 도움이 된 포인트

    합창 앙상블에서 유니즌 구간의 음정과 발음을 맞추는 것은 생각보다 까다롭습니다. 각자 음역대가 다른 성부가 같은 음을 부를 때 발음 타이밍이 조금만 어긋나도 전체 소리가 흔들립니다. 제 경험상 이 부분은 단순히 더 많이 부른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소리를 잘 듣고 지휘자의 손 끝을 집중하는 데서 출발해야 합니다. 처음 시작은 힘을 주어 부르는 게 아니라 호흡을 흘려보내며 그 위에 소리만 살짝 얹어 불러야 합니다. 상대방 성부의 소리를 들으면서 내 소리를 거기에 맞추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이를 '청음 중심 앙상블 훈련'이라고도 부릅니다.

    요약: 유니즌과 레가토라는 음악적 장치를 이해하고, 서로의 소리를 들으며 맞추는 훈련이 이 곡의 핵심 연습 포인트입니다.

    일상에서 이 찬양이 바꾼 것들

    이 찬양을 준비하면서 저는 스스로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지게 됐습니다.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나는 가장 먼저 무엇을 바라보는가?"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의 질문이었습니다. 찬양 연습을 한다고 그런 생각이 들 줄은 몰랐거든요.

    되돌아보니 저는 문제가 생기면 가장 먼저 해결 방법을 찾으러 달려갑니다. 직장에서 일이 쌓이면 마음이 급해지고,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상황을 미리 시뮬레이션하면서 걱정하는 패턴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찬양을 반복해서 부르면서 "하나님만 바라보라"는 가사가 어느 순간 단순한 멜로디가 아니라 직접적인 질문처럼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작은 실천을 하나 추가했습니다. 걱정이 올라오는 순간, 바로 해결책을 찾기 전에 잠깐 멈추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아주 거창한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일도 아신다"는 짧은 고백 정도입니다. 이것이 문제를 사라지게 만들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급하게 달려가는 방향이 조금씩 바뀌는 것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찬양학자 로버트 웨버(Robert Webber)는 예배와 찬양이 단순히 감정적 체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재정렬하는 행위라고 설명한 바 있습니다(출처: BibleGateway, 시편 62편 원문 참조). 제가 이 찬양에서 경험한 것이 정확히 그 부분이었습니다. 곡을 배우면서 제 마음의 우선순위가 재정렬되는 느낌이었습니다.

    "하나님만 바라보라"는 말은 문제를 무시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문제보다 크신 분을 먼저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이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이 찬양을 부르는 데도, 또 매일의 삶에서도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찬송가공회가 강조하는 것처럼, 예배 음악은 회중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통로가 되어야 하며(출처: 코러스센터), 이 곡은 그 역할을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해내고 있습니다.

    요약: 이 찬양은 문제가 없는 삶이 아니라, 문제 앞에서도 하나님을 먼저 바라보는 신앙의 방향을 일상 속에서 실천하게 해 주었습니다.

    하나님만바라보라.mp3
    9.41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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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음원은 충현교회 임마누엘찬양대의 예배 실황녹음입니다. 찬양의 메시지를 이해하는 도움을 드리기 위해 첨부하였습니다.)

    결론

    이 찬양을 준비하면서 저는 한 가지를 다시 배웠습니다. 믿음이란 문제가 없는 상태가 아니라, 문제가 있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는 방향의 선택이라는 것입니다. 시편 62편의 다윗도 그랬고, 이 곡을 부르면서 저도 조금씩 그 방향을 연습하고 있습니다.

    찬양대가 이 곡을 부를 때 소리의 크기보다 가사에 담긴 고백이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영혼아"라고 부를 때 자기 자신의 마음에 직접 말을 거는 그 자세, 그것이 이 곡을 살아있게 만드는 힘이라고 느꼈습니다. 오늘도 해결되지 않은 일이 있다면, 잠깐 멈추고 이 가사를 다시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참고: https://choruscente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