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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날 아침 통장 잔고를 확인하면서 이상하게 마음이 허전했던 때가 있습니다. 월급이 들어오면 잠시 안도합니다.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아 카드값과 생활비가 빠져나가고, 다시 다음 월급날을 기다리게 됩니다. 그때 저는 가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을까? 돈이 없어서만 힘든 것은 아니었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해야 할 일을 하고, 월급을 받아도 마음 한쪽이 채워지지 않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그런 시기에 찬양대에서 처음 만난 곡이「예수만이 참기쁨」이었습니다
지휘자님의 한마디가 연습의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밝고 편안한 성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여러 차례 연습하면서 가사를 따라 부르다 보니 이 찬양이 제 마음속 공허함을 정확하게 건드리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내가 원하는 기쁨은 무엇인가?
돈이 많아지는 것일까.
일이 잘되는 것일까.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일까.
아니면 그것들과 상관없이 예수님 안에서 누릴 수 있는 기쁨일까.
이 질문이 이 찬양을 부를 때마다 제 마음에 남았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밝은 성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처음 악보를 받았을 때 저는 이 곡이 크게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멜로디가 친숙했고 분위기도 밝았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음정과 리듬만 잘 맞추면 금방 완성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찬양대 전체가 함께 연습하기 시작하자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음정은 맞는데 노래가 살아 있지 않았습니다.
각 파트가 악보를 정확하게 부르고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마치 음표를 읽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노래는 열심히 부르고 있었지만 마음속에서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음 부분은 어디지?
내가 음을 제대로 냈나?
다음에 들어갈 타이밍은 언제지?
음악적인 것에만 집중하다 보니 정작 예수만이 참기쁨이라는 고백을 잊고 있었습니다.
그날 지휘자님께서 연습을 잠시 멈추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곡을 다시 생각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말씀은 이렇습니다.
기쁨을 억지로 표현하려 하지 말고, 예수님 때문에 감사했던 마음을 생각하면서 불러보세요.
그 말을 듣고 다시 불렀습니다.
신기하게도 소리가 달라졌습니다.
갑자기 모두가 웃으면서 부른 것도 아니고 음정이 달라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노래의 느낌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저도 노래를 부르면서 제 삶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최근에 감사했던 일은 무엇이었는지,
힘들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나를 붙들어 주셨는지,
내가 원하는 대로 일이 풀리지 않았을 때도 어떻게 하루를 지나왔는지를 떠올렸습니다.
그러자 기쁨 이라는 말이 조금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기쁨은 항상 웃고 있는 상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힘든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 마음도 기쁨일 수 있겠구나.
월급이 들어와도 채워지지 않았던 마음
이 찬양을 부르면서 저는 한동안 잊고 있었던 제 모습을 돌아보게 됐습니다.
저는 열심히 일하면 마음이 편해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월급을 받으면 조금 더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필요한 것을 사고 나면 만족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월급날에는 잠시 기분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며칠 지나면 다시 걱정이 생겼습니다.
생활비가 얼마나 남았는지 계산하고, 앞으로 필요한 돈을 생각하고, 예상하지 못했던 지출이 생기면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그때 「예수만이 참기쁨」을 부르면서 깨닫게 됐습니다.
돈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돈이 내 마음의 기쁨을 결정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생활에 필요한 돈을 준비하는 것은 당연히 중요합니다.
직장에서 성실하게 일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것들이 내 마음의 평안까지 책임져 줄 수는 없었습니다.
그 자리를 예수님께서 채워주셔야 한다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됐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기쁨은 무엇일까
이 찬양을 더 깊이 이해하고 싶어서 관련 성경 말씀을 다시 찾아보았습니다.
요한복음 15장 11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의 기쁨이 그들 안에 있어 그들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기를 원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읽으면서 저는 기쁨의 출처에 대해 다시 생각했습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행복은 대부분 조건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돈이 있으면 행복하고,
건강하면 행복하고,
일이 잘되면 행복하고,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면 행복합니다.
물론 이런 것들이 우리의 삶에 좋은 영향을 줍니다.
그러나 이런 조건들은 언제든 달라질 수 있습니다.
반면 예수님이 주시는 기쁨은 환경 하나에만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기쁨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4장 4절의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도 조금 다르게 읽혔습니다.
사도 바울이 편안하고 모든 것이 잘되는 상황에서 이 말을 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그 말씀의 무게가 달라집니다.
저는 이 부분을 찬양하면서 자주 생각하게 됐습니다.
'지금 내 상황이 좋아서 기뻐하는가, 아니면 상황과 관계없이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뻐할 수 있는가?'
찬양대 연습에서 예상하지 못한 어려움
이 곡은 음정 자체가 특별히 어려운 곡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쉬워 보였기 때문에 더 어려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감정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것이었습니다.
밝은 곡이라고 해서 처음부터 큰 소리로 웃는 듯이 부르면 오히려 가벼워졌습니다.
반대로 너무 얌전하게 부르면 곡이 가진 기쁨이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작은 셈여림부터 큰 부분까지 차이를 만들어 내는 연습을 많이 했습니다.
저는 그 과정에서 다이내믹이 단순히 소리의 크기를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작게 부르는 부분에서는 기대와 고백을 담고, 점점 커지는 부분에서는 확신과 기쁨을 표현하는 것이었습니다.
같은 음량이라도 어떤 마음으로 부르느냐에 따라 소리가 다르게 들릴 수 있다는 것도 경험했습니다.
소프라노와 테너의 호흡을 맞추며 배운 것
특히 기억에 남는 연습은 후렴 부분입니다.
소프라노와 테너가 같은 문장을 부를 때 호흡이 조금씩 어긋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타이밍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박자를 더 정확하게 맞추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계속 맞춰도 뭔가 자연스럽지 않았습니다.
나중에는 서로의 호흡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 먼저 숨을 쉬면 다른 성부가 그 흐름을 듣고 들어가는 방식으로 연습했습니다.
그러자 같은 음을 맞추는 것보다 같은 호흡을 갖는 것이 더 중요할 때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찬양대에서는 각자 잘 부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함께 노래해야 합니다.
이 경험을 통해 저는 신앙생활에서도 비슷한 점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혼자 잘하는 것보다 함께 걸어가는 것이 중요하고,
내 생각을 주장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필요하고,
내 목소리를 크게 내는 것보다 공동체 안에서 서로의 소리를 듣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한 번은 연습을 하다가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어느 날은 연습이 잘되지 않았습니다.
같은 부분을 반복해서 연습했는데도 만족스럽지 않았습니다.
저는 제 파트의 실수를 계속 생각했습니다.
'왜 이것도 제대로 못했을까?'
'다른 사람들은 잘하는데 나만 자꾸 틀리는 것 같다.'
연습이 끝났는데도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오는 길에 문득 그날 연습했던 찬양이 생각났습니다.
'예수만이 참기쁨.'
그 순간 조금 웃음이 났습니다.
저는 찬양을 부르면서도 제 기쁨을 제 실력에 걸어놓고 있었던 것입니다.
노래를 잘하면 기쁘고,
실수하면 낙심하고.
그것은 결국 제 기쁨의 기준이 예수님이 아니라 제 자신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그날 이후 저는 연습에서 실수했을 때 조금 다르게 생각하려고 합니다.
물론 잘 부르기 위해 다시 연습해야 합니다.
하지만 실수 하나가 나의 가치까지 결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려고 합니다.
실제 예배에서 이 곡을 부른 날
이 곡을 실제 주일예배에서 찬양했던 날도 기억에 남습니다.
연습할 때보다 예배당의 분위기가 훨씬 조용했습니다.
찬양대가 자리에 서고 첫 소리가 시작되자 평소 연습실에서 듣던 것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특히 처음 부분에서는 억지로 기쁨을 표현하려고 하기보다 가사의 의미를 생각하려고 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내가 감사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 질문을 마음에 품고 불렀습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모든 성부가 함께 소리를 내는데, 그 순간에는 연습실에서 여러 번 맞췄던 과정들이 떠올랐습니다.
처음에는 맞지 않았던 호흡도 맞아졌고,
각 파트가 서로의 소리를 들으면서 하나의 울림을 만들어냈습니다.
찬양이 끝난 뒤 한 성도님께서 제게 다가오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찬양을 들으니 마음이 다시 기뻐졌습니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우리는 그날 예배를 위해 수없이 연습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그 몇 분의 찬양이 힘든 마음을 다시 일으키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때 실감했습니다.
그 이후 저는 찬양대에서 부르는 한 곡 한 곡을 조금 더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습니다.
찬양대에서 배운 '기쁨'은 집에서도 이어졌습니다
이 곡을 부른 뒤에도 삶의 문제는 계속됐습니다.
월급은 다시 들어오고 다시 나갔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지출도 생겼고, 일 때문에 마음이 힘든 날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이 찬양의 제목을 떠올렸습니다.
예수만이 참기쁨.
모든 문제가 해결되어야 기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문제 가운데서도 예수님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제가 조금씩 배운 기쁨이었습니다.
가정에서 마음이 상하는 일이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전에는 마음이 상하면 그 감정을 그대로 붙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잠시 멈추고 기도하려고 합니다.
"예수님, 제 마음이 지금 너무 힘듭니다. 제가 제 감정만 바라보지 않게 해주세요."
짧은 기도지만 마음이 조금 달라질 때가 있습니다.
기쁨은 항상 웃는 얼굴이 아니었습니다
예전에는 기쁨을 밝고 즐거운 감정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기쁜 찬양을 부를 때도 얼굴 표정이나 목소리를 밝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 곡을 연습하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기쁨은 슬픔이 없는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눈물이 날 때도 기뻐할 수 있고,
걱정이 있을 때도 하나님을 믿을 수 있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는데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이 곡을 부를 때 억지로 밝은 표정을 만들려고 하지 않습니다.
내 마음속에서 예수님께 감사했던 일을 하나라도 떠올리려고 합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목소리에도 조금씩 변화가 생깁니다.
다시 이 곡을 연습한다면
지금 다시 「예수만이 참기쁨」을 연습한다면 처음부터 악보만 보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먼저 가사를 읽어볼 것입니다.
그리고 최근에 하나님께 감사했던 일을 하나 떠올릴 것입니다.
그다음 첫 소리를 내고 싶습니다.
연습할 때는 다음 네 가지를 특히 신경 쓰려고 합니다.
첫째, 다이내믹입니다.
처음부터 크게 부르지 않고 곡이 자연스럽게 확장되도록 힘을 조절하겠습니다.
둘째, 성부 간 균형입니다.
내 파트가 잘 들리는 것보다 전체 화음이 아름답게 들리는 것을 우선하겠습니다.
셋째, 호흡입니다.
파트별 호흡을 미리 맞춰서 문장이 끊기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넷째, 가사의 전달입니다.
정확한 발음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부르는 말의 의미를 먼저 생각하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쁨을 억지로 만들어내려고 하지 않겠습니다.
예수님께 받은 은혜를 생각하면 그 마음이 자연스럽게 소리에 나타날 것이라고 믿습니다.
지금도 제 마음에 남아 있는 한 가지
「예수만이 참기쁨」을 처음 만났을 때 저는 돈과 일과 현실적인 문제들 속에서 기쁨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월급날의 잠깐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찬양대에서 이 곡을 반복해서 부르면서 저는 조금 다른 것을 배웠습니다.
환경이 변해야만 기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
내가 가진 것이 많아져야만 감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기쁨의 이유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마음이 무거운 날이면 이 찬양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조용히 제 마음속으로 말합니다.
"예수님, 제가 다시 주님을 바라보게 해주세요."
문제가 당장 해결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상황이 원하는 대로 바뀌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내 마음의 중심이 다시 예수님께 향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만이 참기쁨
찬양대에서 한 곡을 연습한다는 것은 악보의 음표를 익히는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저에게 이 곡은 내가 무엇을 기쁨의 기준으로 삼고 살아왔는지를 돌아보게 한 찬양이었습니다.
돈이 많으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일이 잘되면 만족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면 마음이 편해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잠시 기쁨을 줄 수는 있어도 마음 깊은 곳까지 채워주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저는 이 찬양의 제목을 조금 다르게 받아들입니다.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에 기뻐할 수 있다는 고백.
그것이 제가 이 찬양을 통해 배운 가장 큰 의미입니다.
앞으로도 찬양대에서 이 곡을 부르게 된다면 단순히 밝고 아름다운 성가로 부르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힘들었던 날들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감사했던 순간들을 기억하고,
예수님 때문에 다시 일어났던 경험들을 기억하면서 부르고 싶습니다.
그리고 찬양대에서 내려온 뒤에도 그 고백을 삶으로 이어가고 싶습니다.
잘 부르는 찬양보다, 삶으로 이어지는 찬양을 부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곡 정보
곡명: 예수만이 참기쁨
원작: Fanny J. Crosby의 찬송시
편곡: Tom Fettke
편성: SATB 혼성합창
주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참된 기쁨
관련 성경: 요한복음 15:11, 빌립보서 4:4, 느헤미야 8:10
국내 번역: 백선용
참고 자료
J.W. Pepper, Hymnary.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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