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처음 「주의 이름으로」를 연습했을 때, 저는 솔직히 화성 맞추기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연습 도중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라는 가사가 갑자기 제 안에 걸렸습니다. 찬양대원으로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이 곡이 단순한 합창곡이 아니라는 걸 몸으로 배웠습니다. 예배를 마친 후 삶의 자리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이 찬양은 그 질문을 매번 새롭게 꺼내 놓습니다.
부르심 — 이 찬양이 처음 제게 말을 걸어온 순간
「주의 이름으로」는 성도가 자신의 능력이나 이름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와 사랑을 의지하여 세상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신앙 고백을 담은 곡입니다. "주의 이름으로 어디든지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선포로 시작되는 도입부는, 그리스도인이 교회 안에만 머무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단번에 일깨웁니다.
제가 직접 부르며 느낀 건, 이 가사가 명령이기 이전에 초대라는 점이었습니다. "추수할 때가 가까워졌도다"라는 구절은 긴박함보다는 오히려 하나님께서 먼저 손을 내밀고 계신다는 따뜻함으로 다가왔습니다. 선교적 교회론(Missional Ecclesiology)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쉽게 말해 교회는 세상 밖에 존재하는 안전한 공간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 파송된 공동체라는 신학적 관점입니다. 이 찬양의 가사는 그 개념을 이론이 아닌 노래로 풀어낸 셈입니다.
"사망이 그늘 있는 곳에 사랑을 전하라 생명을 전하라"는 중간 부분에 이르면, 복음이 필요한 세상의 구체적인 얼굴이 떠오릅니다. 제 경험상 이 대목을 부를 때마다 직장 동료 한 명, 이웃 한 사람이 눈앞에 겹쳐 보이곤 했습니다. 신학적으로 이 부분은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 즉 하나님께서 스스로 세상을 향해 나아가시는 구원의 움직임에 교회가 동참하도록 부르신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 도입부: 하나님의 보내심에 응답하는 믿음의 자세 — "주의 이름으로 어디든지 가라"
- 중간부: 절망과 어둠 속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과 생명을 전하는 교회의 사명
- 후반부: 다시 오실 주님을 바라보며 현재의 삶에서 충성스럽게 사명을 감당하는 결단
편곡 — Joseph M. Martin이 쌓아 올린 화성의 설계도
이 곡의 음악적 완성도를 이야기할 때 Joseph M. Martin의 편곡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는 미국의 저명한 합창 작곡가이자 편곡가로, 교회 합창 음악 분야에서 수십 년간 방대한 작품을 남겨온 인물입니다(출처: Joseph M. Martin 공식 사이트). 제가 처음 악보를 받아 펼쳤을 때, 화성 진행이 예상보다 훨씬 세밀하게 설계되어 있어서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도입부는 절제된 반주와 안정적인 화성으로 조용하게 시작됩니다. 여기서 화성(Harmony)이란 두 개 이상의 음이 동시에 울리며 만들어내는 소리의 어울림을 말하는데, 이 곡의 초반 화성은 예배자가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는 자세를 음악적으로 표현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연습하면서 이 부분을 '고요히 듣는 구간'이라고 마음속으로 이름 붙였을 정도였습니다.
전개부로 넘어가면 각 성부가 서로 응답하며 화성을 쌓아갑니다. 소프라노의 선명한 선율 위에 알토가 따뜻하게 받쳐주고, 테너와 베이스가 견고한 기반을 다지는 구조는 교회 공동체의 연합을 소리로 형상화한 것입니다. 대위법(Counterpoint)이라고 불리는 이 기법은, 서로 다른 선율 선이 독립적으로 움직이면서도 조화를 이루는 작곡 원리입니다. 각 파트가 제 목소리를 내면서도 하나의 메시지를 향해 모이는 모습이 찬양대 공동체 자체와 참 닮았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습니다.
후반부에서는 다이내믹(Dynamic), 즉 음악의 셈여림이 점차 확장되면서 곡이 힘찬 절정으로 치닫습니다. 이 절정은 단지 큰 소리를 위한 장치가 아닙니다. 온 교회가 한마음으로 복음의 사명을 선포하는 신앙 고백이 소리가 된 순간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확신과 소망이 담긴 화성으로 부드럽게 닫히는데, 음악은 끝나지만 사명은 그 자리에서 시작된다는 여운을 남깁니다.
사명 — 노래가 끝난 자리에서 시작되는 것들
오래 찬양대를 섬기다 보면 어느 시점에 이런 질문이 생깁니다. '나는 노래를 잘 부르러 여기 있는 건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건가.' 「주의 이름으로」는 그 질문에 정면으로 답을 내놓는 곡입니다. 이 찬양을 거듭 연습하면서 제가 깨달은 건, 예배당 안에서의 감동이 예배 문을 나서는 순간 삶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단순한 진리였습니다.
복음 전도(Evangelism)는 특별히 훈련받은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복음 전도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 부활의 의미를 말과 행동으로 전하는 모든 행위를 가리킵니다. 제 경우엔 목소리를 높여 선포하는 방식보다는 직장에서 묵묵히 신뢰를 쌓고, 가정에서 먼저 사과하는 작은 일들이 더 진솔한 복음 전도였다는 걸 이 찬양을 부르면서 배웠습니다.
선교학자들은 교회의 존재 방식을 '모임(gathering)'과 '흩어짐(scattering)'의 두 축으로 설명합니다(출처: 로잔운동(Lausanne Movement)). 예배로 모이는 것만큼이나 세상 속으로 흩어지는 것이 교회의 본질적인 모습이라는 관점입니다. 이 찬양의 가사 "세상 향해 나가라 주의 이름으로"는 그 신학적 통찰을 단 한 줄로 압축한 고백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곡을 부를 때마다 제가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이 있습니다. '오늘 제 가족 중 한 사람에게, 동료 중 한 사람에게 예수님의 향기를 전했는가.' 거창한 선교가 아니라 오늘 하루의 섬김과 사랑이 바로 이 찬양이 요청하는 삶이라는 걸, 수십 번의 연습과 예배를 통해 몸으로 익혔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주의 이름으로」는 어느 수준의 찬양대가 부를 수 있나요?
A. 제가 직접 경험해 보니 초·중급 찬양대도 충분히 도전할 수 있는 곡입니다. Joseph M. Martin의 편곡은 각 성부의 음역이 무리하지 않게 설계되어 있고, 화성 진행도 단계적으로 쌓이기 때문에 연습량이 쌓이면 아름다운 완성도를 낼 수 있습니다. 다만 후반부 다이내믹 변화를 자연스럽게 표현하려면 지휘자와 함께 충분한 합주 시간이 필요합니다.
Q. 이 곡은 주로 어떤 예배 상황에서 부르나요?
A. 선교 주일, 전도 집회, 파송 예배처럼 복음 전도와 선교의 의미를 강조하는 예배에서 특히 잘 어울립니다. 제가 섬겼던 교회에서는 해외 선교사를 파송하는 예배 때 이 곡을 불렀는데, 가사의 무게가 그 어느 때보다 크게 다가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물론 일반 주일 예배의 특송으로도 충분한 울림을 줍니다.
Q. Joseph M. Martin은 어떤 작곡가인가요?
A. 미국에서 활동하는 교회 합창 음악 전문 작곡가·편곡가로, 수백 편에 달하는 성가 합창 작품을 남긴 인물입니다. 그의 편곡은 아마추어 찬양대도 부를 수 있도록 성부별 음역을 배려하면서도, 신앙의 메시지를 음악적으로 풍부하게 담아낸다는 점에서 교회 음악계에서 널리 사랑받고 있습니다. 공식 작품 목록은 Joseph M. Martin 공식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Q. 찬양대가 아닌 일반 성도도 이 찬양의 의미를 나눌 수 있나요?
A. 물론입니다. 이 곡의 메시지는 찬양대석에 앉은 사람에게만 향하지 않습니다. 로잔운동이 강조해온 것처럼 선교는 교회 전체의 정체성이며, 직장인, 학생, 부모 누구든 각자의 자리가 바로 파송지입니다. 찬양을 듣는 것만으로도 "세상 향해 나가라"는 부르심을 충분히 가슴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결론
오랜 찬양대 생활을 돌아보면, 「주의 이름으로」만큼 제 신앙의 방향을 다잡아 준 곡이 많지 않습니다. 음악적으로는 Joseph M. Martin의 치밀한 편곡이 빚어내는 화성의 아름다움이 있고, 신앙적으로는 선교적 교회론과 하나님의 선교라는 깊은 신학이 가사 한 줄 한 줄에 녹아 있습니다. 이 두 가지가 맞물릴 때 이 찬양은 단순한 공연을 넘어 예배 공동체의 고백이 됩니다.
정리하면, 이 곡이 전하는 핵심은 하나입니다. 예배는 교회 안에서 완성되지 않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는 순간, 그 삶이 복음 전도의 현장이 될 때 비로소 예배가 온전해진다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저는 '주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말보다 먼저 사랑과 섬김으로 제 주변에 예수님의 향기를 전하고 싶습니다. 이 찬양은 그 결단을 매번 새롭게 불러일으켜 주는 저만의 사명의 노래로 오래 남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