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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성가

예수 예수 복된 이름을 부르며 다시 찾은 마음의 평안

myinfo81487 2026. 7. 24. 12:49

목차


    하늘과 땅의 이미지

    찬양대에서 여러 성가를 연습하다 보면 처음에는 별다른 느낌이 없었던 곡이 어느 순간 마음에 깊이 들어올 때가 있습니다.저에게 「예수 예수 복된 이름」이 그런 곡이었습니다.처음 악보를 받았을 때만 해도 특별히 어려운 곡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화려한 전조가 있는 것도 아니고, 빠른 리듬으로 몰아가는 곡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잔잔하고 편안했습니다.그런데 첫 연습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상하게 곡의 제목이 계속 생각났습니다.예수 예수 복된 이름.그날은 유난히 마음이 무거운 날이었습니다. 삶에서 해결해야 할 일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내가 감당해야 할 일들을 하나씩 생각하다 보니 마음이 점점 지쳐갔습니다.그런데 연습하면서 반복해서 불렀던 예수님의 이름이 집에 돌아와서도 마음에 남아 있었습니다.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이 곡은 화려하게 감정을 끌어올리는 노래가 아니라 지친 마음이 예수님의 이름을 다시 붙드는 노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쉬운 곡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처음 악보를 펼쳤을 때 솔직히 저는 이 곡을 어렵지 않은 성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음표를 살펴보고 리듬을 확인하면서 이 정도면 연습을 많이 하지 않아도 되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찬양대 전체가 함께 부르기 시작하자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음정은 맞는데 노래가 마음에 와닿지 않았습니다.

    악보대로 정확하게 부르고 있는데도 뭔가 밋밋했습니다.

    저는 처음에 그 이유를 음악적인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디에서 음량을 더 크게 해야 할까?

    후반부에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어떤 성부가 더 강조되어야 할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악보를 계속 들여다봤습니다.

    그런데 지휘자 선생님께서 조금 다른 방법을 제시하셨습니다.

    오늘은 노래하지 말고 가사를 먼저 읽어봅시다.

    처음에는 조금 의외였습니다.

    이미 알고 있는 가사를 왜 다시 읽어야 할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가사를 천천히 읽어보니 제가 그동안 노래를 부르면서도 가사의 의미를 제대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가사를 읽으니 같은 노래가 다르게 들렸습니다.

    우리는 찬양을 여러 번 반복해서 부르다 보면 어느 순간 가사를 생각하지 않고도 노래할 수 있게 됩니다.

    음정도 익숙해지고, 리듬도 익숙해지고, 호흡 위치도 익숙해집니다.

    찬양대 연습에서는 이것이 필요한 과정입니다.

    하지만 너무 익숙해지면 한 가지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입은 찬양하고 있는데 마음은 다른 곳에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악보를 보고 음정을 맞추고 지휘자를 따라가면서 열심히 부르고 있었지만, 정작 '예수'라는 이름을 왜 반복해서 부르는지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가사를 천천히 읽고 나서 다시 노래해 보니 느낌이 달라졌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이 단순히 아름다운 문장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힘들 때 찾을 이름이 있다는 것.

    마음이 흔들릴 때 돌아갈 대상이 있다는 것.

    내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도 의지할 분이 있다는 것.

    그 사실이 이 곡을 통해 조금씩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성경에서 다시 찾아보다

    그 후 저는 예수님의 이름이 성경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다시 찾아보게 됐습니다.

    빌립보서 2장 9~11절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지극히 높이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다고 말씀합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의미를 분명하게 선포합니다.

    이 말씀들을 다시 읽고 찬양을 부르니 예전에는 단순하게 반복되던 예수라는 이름이 조금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저에게 그것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었습니다.

    구원의 이름이고, 내가 의지할 이름이며, 삶의 방향을 다시 잡게 하는 이름이었습니다.

    물론 성경 말씀을 안다고 해서 삶의 모든 걱정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도 여전히 걱정하고, 실망하고, 때로는 마음이 무너집니다.

    하지만 예전과 달라진 것이 하나 있습니다.

    걱정이 생겼을 때 그 걱정만 계속 바라보지 않고 예수님을 다시 생각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찬양대 연습에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음정이 아니었습니다

    이 곡을 연습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의외로 음정이나 리듬이 아니었습니다.

    감정을 과하게 표현하지 않으면서도 가사의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었습니다.

    잔잔한 곡이다 보니 처음에는 소리를 크게 내면 감정이 더 잘 전달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중요한 부분에서는 자연스럽게 목소리에 힘을 주게 됐습니다.

    그런데 여러 번 연습하면서 오히려 반대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이 곡은 큰 소리보다 진심이 느껴지는 소리가 더 중요했습니다.

    소리를 크게 내는 것과 마음을 깊이 담는 것은 다른 문제였습니다.

    저는 이 차이를 연습하면서 조금씩 배웠습니다.

    소프라노 독창을 들으면서 배운 것

    제가 연습한 편곡은 소프라노 독창으로 시작한 뒤 다른 성부가 조금씩 합류하면서 전체 합창으로 확장되는 구조였습니다.

    처음에는 독창 부분이 전체 합창보다 작게 들리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독창을 맡은 사람이 충분히 크게 불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연습을 반복하면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오히려 첫 소리가 너무 크면 뒤에 이어지는 합창의 여유가 사라졌습니다.

    한 사람의 작은 고백이 시작되고 그것이 점점 공동체의 고백으로 확장되는 느낌을 살리려면 처음에는 여백과 절제가 필요했습니다.

    그것을 깨닫고 나서 찬양대의 시작 부분을 듣는 제 귀도 달라졌습니다.

    '얼마나 크게 시작했는가'보다

    '어떤 마음으로 시작했는가'

    를 더 중요하게 듣게 됐습니다.

    성부끼리 서로 듣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웠습니다

    찬양대 연습을 오래 하다 보면 자기 파트의 음을 정확하게 부르는 데 집중하게 됩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내가 틀리지 않는 것이 중요했고, 우리 파트가 정확하게 들어가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연습 중에 지휘자께서 다른 성부의 소리를 들으면서 불러보라고 하셨습니다.

    처음에는 쉽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해보니 생각보다 어려웠습니다.

    내 파트의 음을 따라가면서 동시에 다른 성부의 소리를 듣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특히 후반부에 여러 성부가 함께 울릴 때는 각 파트가 자기 소리를 앞세우면 전체적인 소리가 오히려 거칠어졌습니다.

    그때 다시 배웠습니다.

    찬양대에서 잘 부른다는 것은 내 소리를 크게 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소리를 들으면서 내 소리를 조절하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음악적인 기술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신앙생활에서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생각만 맞다고 주장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

    내가 인정받으려고 하기보다 함께 좋은 방향을 만들어가는 것.

    찬양대 연습이 저에게 이런 부분까지 생각하게 했습니다.

    호흡 하나가 곡의 느낌을 바꾸었습니다

    또 하나 기억에 남는 것은 호흡이었습니다.

    '예수 예수 복된 이름'이라는 문장이 반복되는데 파트마다 숨을 쉬는 위치가 달라지면 문장이 중간중간 끊어져 들렸습니다.

    처음에는 별것 아닌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파트별 호흡 위치를 맞추고 나니 곡의 흐름이 훨씬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저희는 악보에 호흡할 위치를 표시하고 서로 확인하면서 여러 번 맞춰보았습니다.

    한 번은 호흡 위치를 너무 많이 표시해서 오히려 문장이 끊어졌고, 다시 지우면서 필요한 곳만 남겼던 기억도 있습니다.

    이런 작은 과정을 반복하면서 찬양대의 완성도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때 느낀 것은 좋은 찬양은 한 번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작은 부분을 계속 다듬어 만들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찬양을 부르다가 눈물이 났습니다

    이 곡을 처음 연습할 때는 눈물이 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반복해서 찬양하던 중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갑자기 마음이 울컥했습니다.

    특별히 음악적으로 감정이 폭발하는 부분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조용한 부분이었습니다.

    그 순간 제 삶에서 여러 가지 걱정이 한꺼번에 떠올랐습니다.

    내가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일들,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들,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마음들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그런 마음을 가지고도 하나님께서 나를 붙들고 계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눈물이 났던 것 같습니다.

    찬양이 끝난 후에도 한동안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이 곡을 이전과 같은 마음으로 부를 수 없게 됐습니다.

    악보에 있는 음표는 그대로인데 제가 그 음표를 바라보는 마음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예수님의 이름이 생각났습니다

    그날 연습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계속 곡이 생각났습니다.

    보통 찬양대 연습이 끝나면 다음 날 해야 할 일이나 집에서 처리할 일을 생각하면서 돌아오곤 합니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습니다.

    마음속으로 조용히 예수님의 이름을 반복했습니다.

    "예수님..."

    그 짧은 한마디를 마음속으로 부르는 것만으로도 복잡했던 생각이 조금씩 가라앉는 느낌이었습니다.

    물론 현실의 문제들이 해결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를 바라보는 제 마음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내가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하나님께 맡길 수 있다는 생각으로 조금 이동한 것입니다.

    저에게는 그것이 이 찬양을 통해 경험한 가장 큰 변화였습니다.

    가정에서도 이 찬양이 생각났습니다

    찬양대에서 부른 찬양은 교회 안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가정에서 마음이 상하는 일이 있을 때도 이 곡이 떠올랐습니다.

    가족에게 서운한 마음이 생기면 '왜 내 마음을 몰라줄까?'라는 생각부터 들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름을 떠올리면서 한 번 더 생각해 보려고 했습니다.

    '내가 지금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하는가, 아니면 내가 인정받기를 원하는가?'

    항상 잘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지금도 서운한 마음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예전보다 한 번 더 멈춰 생각하게 됐습니다.

    저는 이것이 찬양이 삶에 들어오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찬양을 많이 부른다고 사람이 저절로 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찬양의 고백을 삶에서 한 번이라도 실천하려고 할 때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습니

    '예수'라는 이름을 부르는 것이 제게는 기도가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기도를 길게 해야 하나님께 제대로 기도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곡을 연습하면서 짧은 기도도 하나님께 드릴 수 있다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출근하기 전에

    "예수님, 오늘도 함께해 주세요."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예수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지혜를 주세요."

    마음이 힘들 때

    "예수님, 제 마음을 붙들어 주세요."

    이렇게 짧게 기도할 때가 있습니다.

    문제가 바로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짧은 기도를 통해 제 시선이 문제에서 예수님께로 조금씩 옮겨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이 곡을 부를 때 '예수'라는 이름을 단순히 정확하게 발음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 이름을 부르는 제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생각하려고 합니다.

    찬양대에서 배운 것은 음악만이 아니었습니다

    이 곡을 연습하면서 저는 몇 가지를 배웠습니다.

    첫째, 작은 소리가 약한 소리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때로는 여린 소리가 더 깊은 감정을 전달합니다.

    둘째, 내 파트만 잘한다고 좋은 합창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서로의 소리를 들어야 하나의 화음이 만들어집니다.

    셋째, 가사를 이해하지 않고는 깊이 있는 찬양을 만들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음정과 리듬을 정확하게 하는 것은 기본이지만, 그 노래가 무엇을 고백하는지 이해해야 표현도 달라집니다.

    넷째, 찬양은 연습실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연습하면서 마음에 들어온 고백이 가정과 직장에서도 나의 생각을 바꾸어 놓을 때, 그때 찬양이 내 삶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이 곡을 부른다면

    지금 다시 「예수 예수 복된 이름」을 부른다면 처음 악보를 받았을 때와는 다른 마음으로 시작할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먼저 음정을 확인했습니다.

    지금은 가사를 먼저 읽어볼 것입니다.

    예전에는 소리가 얼마나 잘 나오는지를 먼저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내가 무엇을 고백하고 있는지를 먼저 생각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소프라노 독창이 시작되면 그 작은 소리를 귀 기울여 듣고 싶습니다.

    한 사람의 고백이 시작되고 다른 성부가 하나씩 더해지면서 공동체의 고백이 되는 과정을 느끼고 싶습니다.

    마지막까지 소리를 크게 만드는 것보다 예수님의 이름을 높이는 마음이 끝까지 유지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다시 붙들며

    삶을 살다 보면 내가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잘해야 하고, 인정받아야 하고, 실수하지 않아야 하고, 가족도 잘 돌봐야 하고, 맡은 일도 제대로 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그러다 지치면 마음속으로 '왜 이렇게 힘들까?'라고 묻게 됩니다.

    그럴 때 저는 이 찬양을 생각합니다.

    예수 예수 복된 이름.

    내가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예수님을 다시 바라보는 것.

    그것이 저에게 이 찬양이 가르쳐준 가장 큰 의미입니다.

    찬양대에서 노래할 때만 예수님의 이름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직장에서 일할 때도, 가족과 이야기할 때도,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할 때도 그 이름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이 찬양을 다시 부르게 된다면 예전보다 조금 더 편안하게, 조금 더 깊이 있게, 그리고 조금 더 진실한 마음으로 부르고 싶습니다.

    잘 부르는 찬양대원이 되는 것보다 예수님의 이름을 진심으로 높이는 예배자가 되고 싶습니다.

    저에게 「예수 예수 복된 이름」은 이제 단순히 한 곡의 성가가 아닙니다.

    힘들 때 다시 돌아갈 이름을 기억하게 해준 찬양이며,
    내가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해준 찬양입니다.

    오늘도 마음이 무거운 날이면 조용히 그 이름을 불러봅니다.

    예수님.

    그 이름 하나만으로도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하루를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곡 정보

    곡명: 예수 예수 복된 이름
    원곡: Jesus, Jesus, Blessed Name
    작사·작곡: Dana Mengel
    국내 번역: 한슬
    수록: 중앙아트 성가집
    편성: SATB 합창
    템포: Tenderly, ♩=96
    주제: 예수님의 이름, 신앙의 고백, 위로와 평안
    묵상 성경: 빌립보서 2:9~11, 사도행전 4:12, 로마서 10:13

    참고 자료

    Hope Publishing
    중앙아트 성가집
    성경전서